<쿠키런모의고사 국어영역 화법과작문 38~42번 장지문 예상>
성장형 캐릭터의 의지가 꺾이는 순간은 어떤 모습일까? 대표적인 예시로 데이터 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평행세계의 크루아상맛 쿠키를 들 수 있다.
가령 수많은 실패를 마주하는 시간관리국 소속 크루아상의 의지가 영원히 꺾이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자. 물론 반복되는 시련은 관리국 소속의 크루아상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크루아상에게는 모든 시간선을 관리할 수 있는 미래의 자신인 시간지기가 있다. 이 시간지기라는 존재는 크루아상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며, 더 이상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온다. 즉, 시간관리국의 크루아상에게 실패란 극복할 수 없는 절망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의 일부로 작용하는 것이다.
반면 데이터 센터 소속의 크루아상은 그렇지 않다.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으며, 마치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태도를 보인다. 특히 끝이 보이지 않아서 무력감을 느낀다는 자조에 가까운 언급을 고려하면, 이미 수많은 실패를 경험한 끝에 더 이상 쉽게 일어서기 어려워진 상태로 해석할 수 있다. 한때 자신의 노력으로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인물이 이제는 그 가능성조차 확신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쪽 세계의 크루아상이 체념한 이유는 단순히 시간지기의 부재 때문일까?
평행세계라는 매력적인 설정은 각각의 세계에 독립성을 부여함으로써 그 가치를 지닌다. 따라서 데이터 센터의 크루아상을 단순히 시간지기를 만나지 못한 관리국의 크루아상으로 해석하는 것은 다소 단편적인 접근일 수 있다. 두 세계의 크루아상은 비슷한 출발점에 서 있었을지라도, 서로 다른 환경에서 각기 다른 경험을 축적하며 독립적인 인물로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두 크루아상이 경험한 실패의 횟수보다도, 그 실패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시간관리국의 크루아상에게 실패란 언젠가 극복할 수 있는 시련이지만, 데이터 센터의 크루아상에게 실패란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두 인물의 차이는 의지의 강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경험을 통해 형성된 마음가짐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성장형 캐릭터의 의지가 꺾이는 순간을 반드시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성장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좌절과 체념 역시 성장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하나의 국면이기 때문이다. 성장형 캐릭터라고 해서 언제나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실패를 경험할 때마다 더욱 강인해져야 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끊임없이 좌절하고 때로는 자신의 가능성을 의심하는 모습이야말로 성장이라는 개념을 더욱 현실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성공과 실패가 교차하는 구조와 연속된 실패 끝에 성공에 도달하는 구조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가령 '성공-실패-성공-실패'라는 구조와 '실패-실패-실패-성공'이라는 구조를 취하는 두 인물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전자의 인물은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과거의 성공을 근거로 미래의 가능성을 확신할 수 있다. 반면 후자의 인물은 아직 성공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자신의 노력이 언젠가 결실을 맺으리라는 막연한 믿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두 인물이 마주하는 실패의 의미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실패는 성공으로 나아가기 위한 일시적인 장애물에 불과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끝을 알 수 없는 고통의 반복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데이터 센터의 크루아상이 보여주는 체념을 시간관리국의 크루아상보다 나약하거나 미성숙한 모습으로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두 인물은 서로 다른 성장 과정을 겪고 있을 뿐이며, 어느 한쪽의 태도가 반드시 정답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성장형 캐릭터의 이야기를 바라볼 때 흔히 결과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속된 실패 끝에 성공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관찰자에게 그 과정은 성장 서사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이야기 속 인물은 자신이 언제 성공할 수 있을지, 나아가 성공이라는 결말이 존재하기는 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관찰자에게는 잠시 지나가는 시련일지라도, 당사자에게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현실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데이터 센터의 크루아상이 보여주는 체념은 성장의 종착점이라기보다, 아직 결말이 정해지지 않은 성장 과정의 한 단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좌절이 반드시 성공이나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당장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인물의 성장 가능성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성장형 캐릭터의 본질은 어떠한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의지가 꺾이고,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더 이상 미래를 기대하지 못하는 순간까지도 그 인물의 서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시간관리국의 크루아상과 데이터 센터의 크루아상은 성공한 성장과 실패한 성장이라는 이분법으로 구분할 수 없다. 두 크루아상은 각자의 세계에서 서로 다른 경험을 통해 변화해 온 인물이며, 그 변화의 방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한쪽의 성장을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성장형 캐릭터의 의지가 꺾이는 순간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성장의 실패가 아니라, 성장이라는 과정이 결코 성공과 희망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