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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계 : 백전도사(@highyoung510) 조금은 진지한 신앙 이야기, 메모 합니다.

Joined June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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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생각 정리를 좀 덜하고 떠오르는 말을 작성하는 곳이므로 여러가지 오류나 논쟁 거리가 좀 있을 수 있습니다. 저도 대충 쓰는 곳이니, 대충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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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내 생각에 선한 일을 했다고 치자. 겸손이 없는 자는 그걸로 끝이다. 그러나 겸손한 자는 이게 정말 선한 일이었을까 계속해서 다른 기준으로 판단을 시도한다.
믿음이란, 선함 위에 존재하는 선함이다. 어떤 선한 가치가 진정으로 선한 것인 것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메타 선함”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는 “겸손”이라는 가치와도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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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란, 선함 위에 존재하는 선함이다. 어떤 선한 가치가 진정으로 선한 것인 것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메타 선함”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는 “겸손”이라는 가치와도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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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한 자는, 자신이 이미 충분히 선하며, 자신의 힘으로 지고의 선을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자는 선악을 자신의 기준으로 단정하며, 더 이상 선을 향한 추구를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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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겸손한 자는, 자신을 계속해서 부족하다고 판단하며, 스스로의 생각을 넘어 존재하는 선함의 가치를 배우고 수용하며, 지속적으로 지고의 선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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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의미에서 나태는 속력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이다. 나태한 것은 단순히 느린것이 아니라 방향을 찾는것에 게으르고 무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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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16)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라(신 6:5)는 명령은 "사랑을 사랑하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냥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이것은 단순한 종교적 명령이 아닌, 세상과 나를 근본적으로 변화 시킬 수 있는 강력한 자기 충족적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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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원의 지구를 2차원의 지도로 투영하면 무조건 오류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신학의 한계도 비슷하다. 신학은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를 투영한 성경을 한번 더 투영하는 작업이다. 그 안에 있는 모든 신비를 온전하게 드러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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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는 분명 유익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성경을 탐험하는 탐험가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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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우리가 사랑 받는 존재임을 기억하고, 참으로 자유하기를 힘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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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세상의 소망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이유는 그것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사랑으로는 부족하다. 원수를 사랑하는 사랑만이 이 세상을 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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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대속의 은혜가 '죄악 자유이용권' 같은 느낌으로 오해되기 마련인데, 실제로는 '선행 자유이용권'에 가깝다. 십자가의 은혜는 완전한 자유를 전제로 한 순수하고 참된 선행을 가능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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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별 교리의 차이가 커피 맛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커피 전문가들은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 차릴 수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냥 쓴맛, 신맛, 고소한 맛 정도 큰 차이만 느낄 뿐이다. 그냥 적당히 맛 있고 카페인만 잘 들어있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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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사랑은 동일한 자유를 가진 존재와 가능합니다. 왕과 노예가 참 사랑을 이룬다는 것은 무척 어렵겠죠. 한 가지 이야기를 만들어보겠습니다. 왕이 어떤 노예를 무척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왕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먼저 왕은 자신에게 있는 권세로 그 노예를 해방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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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은 참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왕은 자신의 권세를 내려놓고, 동등한 관계의 입장에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참 사랑이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그 후 사랑의 관계가 시작되고 깊어진다면, 왕은 그제서야 자신의 정체를 밝힐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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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노예였던 그 사람은 마침내 왕비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게 됩니다. 이 세 가지의 과정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일과 동일합니다. 그 분은 당신의 권세로 우리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셨고, 자기를 비워 인간으로 내려오셨으며, 우리를 마침내 당신의 공동 통치자로 만드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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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간 것은 그가 열심으로 주님을 찾았다기보다도, 그의 어그러진 삶을 보여주는 일종의 표징일 수 있겠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타인의 눈치를 전혀 신경쓰지 않고 위로 올라가는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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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 "속히 내려오라" 말씀하시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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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자 하는 것도 욕망으로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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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을 믿는 사람은 언제나 시간이 충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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