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계 : 백전도사(@highyoung510) 조금은 진지한 신앙 이야기, 메모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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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란, 선함 위에 존재하는 선함이다. 어떤 선한 가치가 진정으로 선한 것인 것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메타 선함”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는 “겸손”이라는 가치와도 일맥상통한다.
교만한 자는, 자신이 이미 충분히 선하며, 자신의 힘으로 지고의 선을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자는 선악을 자신의 기준으로 단정하며, 더 이상 선을 향한 추구를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16)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라(신 6:5)는 명령은 "사랑을 사랑하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냥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이것은 단순한 종교적 명령이 아닌, 세상과 나를 근본적으로 변화 시킬 수 있는 강력한 자기 충족적 명령이다.
3차원의 지구를 2차원의 지도로 투영하면 무조건 오류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신학의 한계도 비슷하다. 신학은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를 투영한 성경을 한번 더 투영하는 작업이다. 그 안에 있는 모든 신비를 온전하게 드러내지 못한다.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가 '죄악 자유이용권' 같은 느낌으로 오해되기 마련인데, 실제로는 '선행 자유이용권'에 가깝다. 십자가의 은혜는 완전한 자유를 전제로 한 순수하고 참된 선행을 가능케한다.
교단별 교리의 차이가 커피 맛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커피 전문가들은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 차릴 수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냥 쓴맛, 신맛, 고소한 맛 정도 큰 차이만 느낄 뿐이다. 그냥 적당히 맛 있고 카페인만 잘 들어있으면 그만이다.
참 사랑은 동일한 자유를 가진 존재와 가능합니다. 왕과 노예가 참 사랑을 이룬다는 것은 무척 어렵겠죠. 한 가지 이야기를 만들어보겠습니다. 왕이 어떤 노예를 무척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왕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먼저 왕은 자신에게 있는 권세로 그 노예를 해방시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왕은 자신의 권세를 내려놓고, 동등한 관계의 입장에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참 사랑이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그 후 사랑의 관계가 시작되고 깊어진다면, 왕은 그제서야 자신의 정체를 밝힐 수 있습니다.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간 것은 그가 열심으로 주님을 찾았다기보다도, 그의 어그러진 삶을 보여주는 일종의 표징일 수 있겠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타인의 눈치를 전혀 신경쓰지 않고 위로 올라가는 삶을 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