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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수 교수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 관련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해외 극우선동’을 떠올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혐오표현’이라고 지칭한 논평도 눈에 띕니다. 오랫동안 이 문제를 연구해 온 입장에서 이와 관련해 몇 마디 적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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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을 보고 먼저 생각난 것은 ‘도그 휘슬(dog whistle)’이다. 도그 휘슬은 오늘날 정치적 혐오선동을 분석하는 중요한 개념 중 하나다. 사람에게는 잘 들리지 않지만 개에게는 들리는 고주파 호루라기에서 유래한 말로, 1980년대 미국의 정치·선거 커뮤니케이션에서 등장했고 이후 정치적 언어의 효과를 분석하는 개념으로 발전했다.
오늘날 극우 정치인들은 노골적인 혐오표현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점점 더 교묘하고 우회적인 방식으로 소수집단에 대한 적대감을 자극하기도 한다. 특히 유럽의 일부 극우 정당들이 집권에 접근하거나 연정에 참여하면서 점점 ‘순한 맛’으로 변신해 온 것과도 관련이 있다. 그 과정에서 주목받게 된 것이 바로 도그 휘슬이다.
도그 휘슬은 정치인들이 특정 집단을 직접 비난하거나 차별하라고 말하지 않으면서도, 지지자들에게는 그 집단에 대한 적대와 배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뜻한다. 겉으로는 일반적인 정책 주장이나 사회적 우려를 전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소수집단에 대한 혐오를 자극하는 방식이다. 대중들이 이에 호응하면서 혐오표현을 쏟아내고 사회적으로 혐오가 확산되지만, 정치인들은 이렇게 변명한다.
“나는 혐오표현을 하지 않았다.”
혐오표현을 직접 쏟아낸 대중과 그 혐오를 유도한 정치인 중 누구의 책임이 더 클까? 적어도 혐오를 정치적으로 동원한 정치인의 책임이 결코 작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혐오표현금지법의 칼날은 노골적인 혐오표현을 한 대중에게는 쉽게 향하지만, 정작 이를 교묘하게 유도한 정치인의 책임을 묻기는 훨씬 어렵다.
유럽의 일부 판례에서는 발언의 내용뿐만 아니라 맥락, 발화자의 지위, 청중, 발언이 초래할 수 있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혐오를 선동한 정치인의 법적 책임을 묻기도 한다. 하지만 우회적인 발언과 그로 인한 혐오의 확산 사이에서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것은 내가 2010년대부터 지금까지 혐오표현의 형사범죄화의 효과를 의심하고 처벌법 도입에도 비판적이었던 여러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직관적인 예를 들어보자. 예전에는 극우 정치인들이 이렇게 말했다고 해보자.
“이주자들을 쫓아내자.”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하는 대신, 다음과 같은 표현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우리는 법과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
“우리는 진정한 국민의 정체성과 전통적 가치를 수호해야 한다.”
“불법 이주자를 추방해야 한다.”
“납세자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
“국민의 일자리를 지키겠다.”
“가짜 난민을 추방해야 한다.”
“이주자 범죄를 척결하겠다.”
문장 자체만 놓고 보면 반드시 틀린 말이거나 혐오표현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문제를 제기하면, 난민 전체가 아니라 오로지 ‘가짜’ 난민만 문제 삼은 것이라고 하거나, 이주자 전체가 아니라 ‘불법’ 이주자만 추방하자는 것이라고 해명한다. 또는 이민정책이나 범죄대책을 이야기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말들은 어떤 맥락에 놓이느냐에 따라 이주자 집단 전체, 난민 집단 전체를 겨냥하는 메시지로 작동할 수 있다. 극우 정치인들은 타이밍과 맥락을 고려하여 자신의 발언이 소수집단에 대한 혐오를 자극하도록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특히 ‘우리’의 이익과 ‘저들’의 이익이 충돌하는 것처럼 대립시키고, 마치 제로섬 관계에 놓여 있는 것처럼 설정하는 것은 아주 전형적인 수법이다. 이렇게 대립시켜 놓으면 공존의 가능성은 사라지고, 오로지 두 가지 선택지만 남게 된다. ‘내 권리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저들의 권리를 지켜줄 것인가’. 결국 대중들로 하여금 ‘내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저들’을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그렇다면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어떨까? 해외 극우 정치인의 혐오선동과 비교해 보면 분명한 차이도 있고, 공통점도 있다.
먼저 차이는 ‘의도’다. 전통적으로 도그 휘슬은 의도적이고 전략적인 정치적 수법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주자를 쫓아내자’는 말을 하고 싶지만 그렇게 말하면 문제가 되니까, 우회적인 표현을 통해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나는 이재명 대통령이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에 대한 적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고, 이를 우회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그런 발언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본인은 정책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사람들이 과잉반응한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실제로 다문화가족에 대한 지원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해명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 대통령의 발언을 해외 극우 정치인의 의도적인 혐오선동과 동일시하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 대통령을 그런 유형의 극우 정치인으로 볼 수도 없고, 민주당을 그런 정치세력으로 분류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괜찮은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극우 혐오선동의 문법과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 다들 먹고살기 힘들다.
2.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3. 이주자와 다문화가족이 부당한 혜택을 받고 있다(는 의심이 있다).
4. 그 때문에 국민이 손해를 보고 있다.
5. 국민의 이익을 지키려면 이주자와 다문화가족의 부당한 혜택을 없애야 한다.
이렇게 문제를 설정하고 나면, 아무리 선의라고 주장하고 정책 제안일 뿐이라고 해명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된다. 대중들에게는 ‘이주자와 다문화가족 = 부당한 혜택을 누리는 집단’이라는 인식이 강화되고, ‘우리’의 이익을 지키려면 ‘저들’의 혜택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의 해외 송금을 근거로 국내 경제에 대한 기여를 낮게 평가하는 발언과 다문화가족의 우대제도를 문제 삼는 발언은 서로 다른 사안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이주민이 얻는 이익이 마치 국민의 손해인 것처럼 인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극우 혐오선동의 문법과 유사성이 나타난다.
게다가 다문화가족은 국민과 구분되는 외부 집단도 아니다. 다문화가족에는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이 포함된다. 그런데도 ‘국민의 이익’과 ‘다문화가족의 혜택’을 대립시키는 식으로 논의가 진행되면, 어느새 다문화가족은 국민의 바깥에 있는 집단처럼 취급된다. 이 역시 ‘우리’와 ‘저들’을 구분하는 정치적 언어가 갖는 위험성이다.
여기서 다시 ‘도그 휘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최근 혐오표현과 언어철학 연구에서는 ‘비의도적 도그 휘슬(unintentional dog whistle)’도 개념화하고 있다. 발화자가 특정 집단에 대한 적대감을 자극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그 발언이 기존의 편견과 적대감을 활성화하여 비슷한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 대통령에게 소수집단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본다. 그렇다고 아무런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공정성에 관한 대중의 불만을 정치적으로 수용하려 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극우 정치인들처럼 소수집단에 대한 적대감을 의도적으로 선동한 것은 아니더라도,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이주자와 다문화가족을 부당한 수혜자로 지목하는 논법을 활용한 셈이다.
극우 정치인들의 의도와는 다르지만, 나름의 정치적 목적에서 매우 유사한 논법을 활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효과 역시 유사한 방향으로 나타날 위험이 있다. 실제로 대통령의 발언을 전후하여 인터넷에서는 이주자와 다문화가족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표현이 쏟아졌다. 대통령의 발언이 그러한 반응을 얼마나 증폭시켰는지 정확하게 측정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이러한 반응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정치인은 자신이 의도한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발언이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아무런 의도 없는 실수였더라도 사과해야 할 일이 있다. 하물며 정치적 목적을 위해 특정 집단을 부당한 수혜자인 것처럼 지목했고, 그로 인해 해당 집단에 대한 적대감이 증폭될 수 있었다면, 단지 혐오나 차별을 의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이쯤 되면 “그럼 이주자와 다문화가족 정책은 건드리지도 말아야 하는 건가”라는 문제제기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당연히 아니다. 정책은 필요성이 사라지거나 설계에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다문화가족 지원정책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하지만 소수집단에 대한 지원정책을 조정하거나 폐지할 때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 집단이 그동안 부당한 혜택을 누려온 것처럼 비치게 해서는 안 되고, 극우의 주장을 받아들였다는 식으로 해석되어 그들에게 ‘승리의 효능감’을 안겨줘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집단이 혜택을 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지원이 왜 도입되었고 지금도 필요한지, 지원 대상과 기준이 합리적인지를 검토하는 것이다. 이것이 통상적인 정책 평가다. 그런데 특정 집단이 부당한 혜택을 누리는 것처럼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논의의 초점은 정책의 타당성에서 그 집단에 대한 불만으로 옮겨가 버린다.
어떤 게시물 하나를 보고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라며 냅다 쟁점화할 것이 아니라, 비서실과 관계부처에서 정책의 취지와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검토한 뒤, 메시지 관리에 유의하면서 개선책을 내놓으면 된다. 전혀 어렵거나 복잡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늘 정책을 조정할 때 거치는 통상적인 절차다. 오히려 왜 유독 이주자와 다문화가족 정책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지 묻고 싶다.
대중들은 다문화가족을 비난하지만, 사실 다문화가족 지원정책을 만든 것은 한국 정부와 국회다. 2006년 정부가 외국인정책과 결혼이민자가족 지원대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고, 2007년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 2008년 다문화가족지원법이 제정되었다. 모두 국회가 제정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해 온 정책들이다. 굳이 이 정책에 심각한 오류가 있어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지원을 받은 다문화가족이 아니라 정책을 만들고 시행해 온 입법부와 행정부에 물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을 해외 극우 정치인의 의도적인 혐오선동과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발언의 의도가 다르다고 해서 그 효과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소수집단을 부당한 수혜자로 지목하고, 다수의 이익과 소수의 이익을 대립시키는 방식은 극우 혐오선동의 전형적인 문법이다. 대통령의 발언 역시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할 위험이 있었고, 실제로 이주자와 다문화가족에 대한 적대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정치인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뿐만 아니라, 자신의 말이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대통령이라면 더욱 그렇다. 혐오를 의도하지 않았다는 해명만으로 그 책임을 벗어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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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가 현장 실행자라면 한편 이해할 수 있는 말이지만 대통령이라면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이 나라의 방향성를 대표하고 있는 존재입니다.
다문화가정이 내국인가정에 비해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것은 필요한 정책이고 당연히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일부 정책이 본래 취지를 벗어난 과잉으로 특혜에 이르거나 내국인가정에 대한 역차별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누가 그 문제를 지적하였는지에 따라 문제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또 그래서도 안됩니다.
특정정책의 과잉은 정책일반의 신뢰를 떨어뜨리므로 문제가 있다면 누가 제기했든 신속하게 시정하는 것이 옳습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은 일반평균에 부족한 부분을 매워 동등성을 회복하는게 목표이므로 특혜나 부당한 우대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일부정책의 과잉을 시정하는 것이 다문화가정에 대한 일반적 차별이나 혐오유발조치로 오인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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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화는 모두가 극우가 되는게 아닐 것이다. 일부 쟁점을 고리로 지지가 넓어지며 선거에서 이기는 방향이 될 것이다.
대통령의 잇따른 발언은 극우들이 줄곧 공들여온 바로 그 시도, 한국 사회의 극우적 토양을 키우는 노력의 연장선에 있다.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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