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은 여전히 고요하고 저편의 하늘은 아무런 죄도 없다는 듯 푸르다. 더는 날아오르지 못한다. 날갯짓을 거듭할수록 흉은 짙어지고, 수면 위에 남겨진 흔적마저 파문 속에 유실된다. 평생 갈망해 온 비상의 종착은 찢기고 갈라져 너덜대는 날개의 잔해. 추락의 끝자락에선 무엇이 날 기다리나.
평온이라는 건 영원히 닿을 수 없는 평행선이다. 나는 한 발짝을 내디뎠고 그것은 한 발짝 멀어졌다. 다시 걸어보면 덩달아 퇴보한다. 어느 지점부터는 방향조차 망각했지만 무의미한 보행을 거듭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족쇄로 변모해 발목을 쥐여잡고 종언의 공허 속으로......
그들이 염원한 것은 진정한 자유였을까, 자유를 꿈꾸는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허울이었을까. 제국의 변화를 꿈꾸던 이들마저 권력의 위세 앞에 복종을 택한다면, 나의 이상은 끝내 침묵으로 매몰되겠지. 그토록 맹목적으로 믿어 온 신념의 끝이 한낱 몽상에 불과하다면.......
아니요, 기대 따위 걸지 마세요. 그들이 반기는 것은 내가 아니라 자신들의 뜻에 부합하는 고결한 황태자일 테니. 낡은 질서를 답습하고 선대의 영광을 되풀이할까요? 난 그런 모순에 수도 없이 질렸어요. 황실의 혈통은 날 옥죄어오는 족쇄일 뿐이죠. 이 침몰하는 배가 가라앉지 않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