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음. 어쩌면 그의 세계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름. 그래서 경청은 하나의 능력이면서 어려운 과제가 아닐까. 나는 그동안 남의 말을 흘려듣기 일쑤였는데, 목수와 딸의 삶을 고스란히 들어 준 꼭두의 큰귀가 부러웠음.
목수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 장면이 인상적임. 아내는 딸을 낳다가 과다출혈로 세상을 떠남. 목수는 큰 충격에 빠졌음. 눈앞에 있는 딸보다는 없는 아내를 그리워함. 그러던 그가 아내의 흔적들을 보면서 깨달음을 얻음. 그가 딸을 '작은 귀신'이라고 칭하는 대목이 특히 애달프게 다가왔음.
초반부터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음. 비극을 독자의 감정이 따라오기도 전에 터뜨렸다면 작위적으로 느껴졌겠지만, 꼭두라는 제삼자의 시선으로 비교적 차분하게 풀어내서 오히려 더 깊이 빠져들었음. 피부에 와닿는 서사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추천함.
인체 수리가 가능하다면 어느 부위를 고쳐 달라고 할까. 단번에 나온 답은 '간'임. 술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가끔 조카들의 깨끗하고 싱싱한 간을 뺏고 싶을 때가 있었음. 그럴 때는 토끼의 간을 노리는 자라가 된 기분임. 신생아 같은 새 간을 얻는다면 술은 적어도 내게는 없는 음료나 다름없을 것임.
적나라한 대목이 인상적임. 트랜스젠더의 성기 이식 이야기임. 가운데손가락을 남성의 성기로, 장을 여성의 성기로 이식한다는 점이 충격적이었음. 여기에 음경의 예민한 부분까지 여성의 성기를 만드는 데 쓰인다는 점도 놀라웠음. 성감대와 성관계가 구체적으로 나와 부끄러우면서도 흥미롭게 읽음.
술술 읽을 수 있는 책. 논픽션을 어려워하는 편인 데다 과학 분야는 오랜만이라 걱정을 안고 읽음. 그런데 그 부담감이 무색하게도 페이지가 쉽게 넘어갔음. 과거의 이야기부터 다루고 있지만, 현대의 독자들도 충분히 체감할 수 있는 이야기임. 현장을 직접 보는 듯한 생동감이 가장 큰 매력임.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과연 평범함의 범주에 속할까. 평범함을 원했던 크뢰거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처럼 들리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음. 누가 봐도 한국인의 외모에 흔한 성씨를 가진 나를 크뢰거와 비교할 바는 못 되겠지만, 다른 의미에서 보편성을 벗어난 사람일지도 모르겠음.
크뢰거가 탐문을 받는 장면이 인상적임. 호텔 사장의 호출을 받고 가 보니 경찰이 함께 있었고, 신분증을 요구함. 마침 신분증이 없던 그에게 직업은 무엇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등을 캐물었음. 질문 앞에서 당황하는 크뢰거의 모습이 마치 정체성을 향한 질문처럼 느껴져 잔상이 오래 남았음.
다소 어렵게 다가온 작품. 스토리를 이해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지만, 문장의 농도가 꽤 깊은 편이어서 빠져들다 보면 책을 덮고 생각에 잠기게 됨. 읽으면서 서머싯 몸 작가의 <면도날>의 래리가 떠오르기도 함. 비슷한 결의 여운을 찾는 독자라면 이 작품에서 충분히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임.
스토리에 녹아든 정보가 인상적임. 고초라는 채소가 등장하는데 지금의 고추를 말함. 고초가 독약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게 새로웠음. 중후반부에서 상수가 단오에 즐기는 전통 놀이를 설명하는데, 광주에서 매년 열리는 '고싸움놀이'가 떠오름. 물론, 소설과 달리 이 놀이는 정월대보름에 함.












